자기소개서 314,713개를 읽어야 한다면

공채 시즌마다 인사팀에서 회자되는 도시전설이 있습니다.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자기소개서(이하 자소서)를 읽으며 밤을 지새웠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지난 한 해 우리나라에서 자소서를 가장 많이 읽어 본 사람은 누구였을까요? 몇 개나 읽었을까요?

숫자부터 공개하겠습니다. 아마 도시전설을 새롭게 쓰게 될 겁니다. 314,713개입니다. 3만 개도 아니고 30만 개가 넘습니다. 1분에 하나씩 주 52시간을 꽉꽉 채워 읽는다고 가정하면, 딱 100일 하고도 하루가 걸립니다. 이게 정말로 가능한 일일까요?

/게티이미지뱅크

기술 발전과 IT 기기 확산에 따라 전 세계적으로 데이터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시장조사 기관인 IDC(International Data Corporation)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새롭게 생성되는 데이터의 80%는 텍스트나 음성, 영상과 같은 비정형 데이터로 추정됩니다.

과거에는 자소서 314,713개에 담긴 어마어마한 텍스트를 분석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자연어 처리, 기계학습 등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최근에는 토픽 분석이나 감정 분석을 통해 주요한 이슈나 여론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자소서를 읽은 사람이 누구일지 조금은 감이 잡히실 겁니다. 사실인사담당자는 아니었습니다. 공공기관 연구원, 좀 더 정확하게는 연구원과 컴퓨터였습니다. 연구 대상은 고용노동부 고용정보시스템(워크넷)에 올라온 청년 계층의 자소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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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결과, 자소서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주제는 태도, 성장배경, 직무 능력, 학내외 활동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태도는 책임, 성실, 성장, 최선, 능력과 같은 단어로 대표됩니다. 성장배경에는 친구, 부모, 시절, 아버지, 어머니와 같은 단어가 묶였고요. 직무 능력에는 자격, 공부, 취득, 취업, 전공이, 학내외 활동에는 동아리, 봉사, 수업, 대학과 같은 단어가 포함되었습니다.

또 한 가지 주목할 만한 점은 감정 분석 결과였습니다. 지원자의 감정은 직무 관련 내용보다 개인사를 서술할 때 나타났는데요. 예상대로 자소서 대부분(93.5%)은 긍정 감정을 나타냈습니다. 중립과 부정은 각각 5.1%, 1.4%를 기록했습니다. 부정으로 분류된 자소서도 주로 본인의 단점이나 과거 역경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부정적인 어휘가 나타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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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자소서 분량은 취업 성공률과 유의미한 관계를 나타냈습니다. 200자 미만, 그러니까 서너 문장에 불과한 경우에는 취업률이 40%에 그쳤습니다. 반면 2,200자 이상 2,400자 미만 구간에서는 취업률이 49%로 증가했습니다. 10포인트 기준으로 대략 A4 1장 반 정도 분량입니다. 분량 제한이 없는 경우에는 1,400자 정도가 적당하다는 것이 중론인데요. 여러분이 지금 이 문장까지 읽고 나면 공백을 포함하여 대략 그 정도 분량이 나옵니다.

사람인이 구직자 1,40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83%는 자소서 작성이 막막하고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자소서는 지원자 개인의 삶에 기반하여 타인을 설득하는 목적의 글입니다. 더없이 주관적인 것을 객관적으로 표현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죠.

이에 학자들은 자소서가 진지한 자기 성찰 없이 단순 취업만을 위한 도구, 또는 타인의 경험을 버무려 낸 ‘자소설’에 그친다고 비판하기도 합니다. 진실되고 생생한 자기 보고가 아닌, 기업과 인사담당자의 요구와 주어진 설정에 따른 맞춤형 생산물에 불과하다는 지적입니다. 자소서가 사실에 기반했든 그렇지 않든 간에, 서류 탈락이 거듭될수록 자기 삶을 통째로 부정당하는 듯한 지원자의 기분만큼은 진실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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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어렵게 쓰고 어렵게 읽는 자소서라면, 조금 더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일례로 앞서 소개한 토픽 분석을 활용하면 우리 회사에 지원하는 이들이 어떤 데 가치를 두고 있는지, 우리 회사가 외부에 어떻게 비춰지는지 알 수 있을 겁니다.

아울러 직무 적합성을 중심으로 한 상시 채용이 확산될 수록, 누구나 주관적이며 긍정적으로 답할 수밖에 없는 질문은 비중을 줄이고, 실질적인 평가에 도움이 될 만한 문항을 보강할 필요가 있습니다. 입사가 확정된 이후에는 자소서 내용을 입사자 교육이나 멘토링에 활용함으로써 매끄럽고 몰입도 있는 온보딩 경험을 선사할 수 있습니다.

오늘도 자소서 삼매경에 빠진 인사담당자 여러분을 위해 가벼운 광고 하나 전해 드리며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최근 사람인이 자연어 처리 기술에 기반한 ‘AI(인공지능) 자기소개서 코칭’ 서비스를 론칭하였는데요. 자체 보유한 160만 건 이상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자소서의 문맥을 이해하고 감점과 가점 요인을 제안해 드립니다. 주변에 자소서로 고민하는 분이 계시면 한번쯤 권해 주셔도 좋을 듯합니다.

※서비스 바로가기 : https://www.saramin.co.kr/zf_user/tools/personal-statement-coaching-service참고문헌
신호철·임옥규(2017) 대학 글쓰기 교육에서 자기소개서의 재구성 연구
양지윤 외(2021) 청년 구직자의 자기소개서 분석
이기형 외(2015) 청년주체들의 '자기소개서' 작성을 중심으로 한 구직 경험의 문화적인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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