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 마 지원자'를 털어내는 방법

“학생들에게 공부를 왜 해야 하고, 왜 대학에 진학해야 하는지를 솔직하게 얘기해주는 것, 그리고 그 힘든 과정을 같이 겪어내는 것이 강사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먼저 진솔한 어른의 모습을 보여줘야 학생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 믿기에, 소통을 잘하는 강사가 되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성실히 작성한 자소서, 7년여간 4회에 걸쳐 학원에서 강사로 일한 이력, 그리고 950점을 넘어선 상위권 수준의 TOEIC 점수. 이는 한 취업준비생이 실제로 채용 중인 기업에 제출한 이력서 및 자기소개서 내용으로, 이 정도면 영어 학원 강사 지원서로는 손색이 없어 보입니다. 다만 문제라면, 그가 이 경력을 내세워 지원한 곳이 ‘영상 촬영/편집 채용’ 분야라는 점 정도겠죠.

사실 이 채용 공고엔 ‘경력 무관’이 명기돼 있긴 합니다. 영상 관련한 기술이나 경험이 없는 분일지라도 지원 자체엔 문제가 없다는 것이죠. 하지만 그렇더라도 진정 입사를 바랐다면, 적어도 자기소개서에 “학교보다 학원에서 공부를 더 열심히 했고, 강의실 앞에서 에너지를 발산하는 강사들을 보면서 꿈을 키웠습니다”는 내용이나 “주위를 돌아보며 동료들과 잘 호흡하는 강사가 되고 싶습니다”는 다짐을 적기보다는, 왜 굳이 진로를 바꿔 영상 업계에 입문하고 싶은지, 관련 경험이나 기술이 없음에도 회사에 어떻게 이바지할 수 있는지 등을 상세히 설명하는 편이 훨씬 나았겠죠.


손자병법에서 이르길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을 싸워도 위험하지 않고, 적을 모르되 나를 알면 한번 이기고 한번은 지며, 적도 모르고 나도 모르면 매번 싸움마다 위태하다(知彼知己, 百戰不殆. 不知彼而知己, 一勝一負. 不知彼, 不知己. 每戰必殆)고 했습니다.

하지만 취업준비생이 지원하는 회사를 잘 모른다면 승률이 절반 정도만 돼도 양호하지 않나 싶습니다. 사람인이 지난 2018년 기업 인사담당자 575명을 대상으로 ‘면접 비호감 지원자 유형’을 설문 조사한 결과 1위는 ‘지원 회사의 기본 정보도 모르는 지원자(24.2%)로 나타났습니다. 호감이 가지 않는 지원자에 대해 55.1%가 ‘감점’한다고 답했으며, 41.2%는 ‘무조건 탈락’이라고 했습니다. ‘아무 영향이 없다’는 답변은 3.7%에 그쳤습니다. 불이익을 당할 확률이 95%를 웃도는 셈이죠.

/사람인에이치알

요즘 같은 취업난 시대에 지원할 기업에 대해 알아보지도 않고 마구잡이로 원서를 내는 사람이 있을까 싶지만, 이러한 ‘묻지 마 지원자’는 오히려 늘어나는 추세라 합니다. 지난해 6월 사람인이 2020년에 채용을 진행한 기업 531사를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82.3%가 ‘묻지 마 지원자가 있었다’고 답했습니다. 40.5%가 코로나 19 창궐 사태 이전과 비교해 묻지 마 지원자가 ‘늘었다’고 답했으며, ‘줄었다’는 응답은 6.4%에 불과했습니다.

판별 기준(복수 응답)으로는 ‘지원 직무에 대한 이해 부족’(46.3%)이 가장 많았고, ‘자소서, 면접 태도 등이 성의 없음’(44.1%)이 뒤를 이었습니다. 전체 지원자 대비 묻지 마 지원자 비율은 평균 37.6%에 달했습니다. 절반이 넘는 기업(57.6%)은 ‘무조건 탈락 시킨다’고 답해, 승률은 여전히 절반을 밑돌았습니다.

/사람인에이치알

기업으로서도 묻지 마 지원자는 상당한 골칫거리입니다. 성의 없는 지원자는 보이는 족족 털어내면 그만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그리 쉽고 간단한 문제가 아니긴 합니다. 앞선 설문조사에 따르면 기업은 묻지 마 지원자 때문에 ‘서류검토 업무 증가’(70.1%·복수응답), ‘면접 불참자 발생’(49.5%), ‘지원자 수 증가로 채용 일정 차질’(29%), ‘합격 후 미출근’(22.6%), ‘조기 퇴사’(15.8%) 등의 피해를 당했다 호소했습니다. 일단 최소한 서류 단계에서부터 업무 폭증을 피할 도리가 없으며, 심지어 조금 방심하거나 불운이 겹치면 마구잡이로 지원한 인물을 걸러내지 못하고 최종합격까지 허락할 수도 있다는 것이죠. 합격한 묻지 마 지원자가 오래지 않아 퇴사를 선언하면 기껏 마무리한 채용을 다시 진행해야 하니 문제고, 설령 머물러 일할 의사를 표하더라도 회사 업무나 직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인물을 제대로 부리기도 쉽지 않을 테죠.

그러다 보니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적극적으로 나서는 기업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원서를 받는 단계에서 간단한 조사를 시행해, 문제 소지가 있거나 회사 혹은 업무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는 지원자를 조기에 걸러내는 것이죠. 실제로 서점에서 직원을 뽑을 때 불법 만화 사이트를 이용하는지를 설문해 부적격자를 빠르게 털어낸 사례가 있었습니다.

불법적인 경로로 만화를 즐기는 인물은, 더 볼 것도 없이 서점 직원으로선 부적격이겠죠./코믹 프라자 트위터 캡처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긴 하지만, 묻지 마 지원자로 판별된 인물을 따로 관리해 혹시라도 재지원하면 불이익을 주는 방식으로 대처하는 기업도 존재합니다. 사람인이 지난 2018년 9월 기업 인사담당자 101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기업 10곳 중 3곳(26.5%)은 묻지 마 지원자를 별도로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60.2%가 그렇게 분류된 인물이 재지원 하면 무조건 탈락시킨다 답했고, 딱히 불이익을 주지 않는다는 응답은 10.8%에 불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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