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바꾸는 동아시아 회식 문화

“꼭 술을 마셔 가며 사람을 만날 필요가 있는지를, 의심하는 직장인이 점차 많아지고 있다.”

이노우에 도모키 닛세이 기초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지난해 11월 발표한 회식 관련 연례 정기 설문조사에서 위와 같은 코멘트를 덧붙였습니다. 연구원이 직장인 777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해당 조사에 따르면, ‘직장에서 술자리가 필요하다’고 응답한 사람은 38%에 그쳤습니다. 이는 전년 대비 16%포인트나 급락한 수치입니다. 처음 조사를 진행한 2017년 이래 ‘불필요하다’는 응답이 ‘필요하다’를 넘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게티이미지뱅크

중국 또한 ‘회식은 필수’라는 전통적인 관념에 조금씩 균열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지난 2020년 CEIBS(China Europe International Business School)와 상하이재경대학교 연구진이 합동으로 진행한 “The effects of mentor alcohol use norms on mentorship quality: The moderating role of protégé traditionality” 연구에 따르면, 멘토의 음주가 멘토링 관계화 효과성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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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팀이 실제 기업에서 멘토링 프로그램에 참여 중인 멘토-멘티 210쌍을 관찰한 결과, 멘티는 술자리를 통해 위계 관계를 경험했을 때 멘토를 자신의 롤 모델이나 미래상으로 받아들이길 원치 않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그 결과 술자리를 거듭하면 멘티가 존경심과 친애감을 오히려 상실했고, 이는 결국엔 멘토링 프로그램 자체의 실패로 이어졌습니다.


여타 동아시아권 국가와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에서도 코로나19가 확산된 것을 계기로 점차 술을 끼고 벌이는 회식의 가치와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사람인이 지난해 8월 직장인 1549명을 대상으로 ‘코로나 통금’에 관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 중 48.1%가 ‘만족한다’는 답을 내놓았습니다. 첫째 가는 이유로 꼽힌 것은 ‘불필요한 직장 회식 사라짐(60.8%·복수응답)’이었습니다. ‘코로나19 감염 위험 감소(55.8%)’는 오히려 이보다 사소한 이유로 취급됐습니다. 심지어 셋째 순위 답변인 ‘과도한 음주 및 유흥 방지(49.9%)’ 또한 회식과 연관이 있는 응답이었습니다.

/사람인에이치알

‘코로나 통금’이 직장 생활에 도움이 된다고 인식하는 이들도 60.1%에 달했으며, 그 이유를 묻는 것에 대한 압도적인 1위 답변은 ‘쓸데없는 회식이 없어짐(74.4%·복수응답)’이었습니다. 다음 순위 답변인 ‘통금으로 일찍 퇴근하는 분위기 조성’은 42.4%에 그쳤습니다.

대체로 연차가 낮을수록 회식을 기피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코로나19 확산세가 수그러들고 거리 두기가 완화될 경우 ‘회식 부활’에 대해 임원급(62.3%), 부장급(60.2%), 과장급(50.4%)은 ‘필요한 회식은 유지돼야 한다’고 응답한 반면, 사원급(60.5%), 대리급(61%)은 ‘이전으로 회귀하면 안 된다’는 의견이 더 많았습니다.

일부 기업은 이러한 요구와 트렌드에 발맞춰 회식을 무리하게 강행하는 대신, 회식에 배정했던 예산을 다른 방향으로 돌려 사용하고 있습니다. GS그룹 지주사인 ㈜GS는 지난해 종무식 등 연말 모임을 개최하는 대신 임직원 40여명 자택으로 밀키트를 배송했습니다. 요기요는 지난해 12월 '선물하기 서비스' 매출 중 25%가 기업 간 거래(B2B) 사업에서 발생했는데, 이는 회식비로 배달앱 쿠폰을 구입해 지급한 회사가 늘어난 것에 따른 효과로 추정됩니다.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지난해 10월 전국 만 19세~59세 직장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직장 내 ‘회식 문화’와 관련한 인식 조사를 실시한 결과, 코로나19 사태가 종식된 이후에도 이처럼 회식을 꺼리는 분위기는 지속될 것이라 보는 시각이 많았습니다. 응답자 중 절반 이상(52.5%)이 코로나19 때문에 자제했던 회식 문화가 앞으로 직장 문화의 한 형태로 굳어질 것 같다는데 공감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회식’이라는 활동 자체가 아예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예측이 압도적이었습니다. 코로나19 종식 이후 직장 내 회식 문화가 사라지게 될 것 같다고 말한 이는 15.3%에 그쳤습니다.

다만 응답자 중 47.8%는 회식이 향후에도 잔존은 하되 ‘모양새’가 크게 달라질 것이라 내다봤습니다. 윗사람과 술을 마시는 활동을 주축으로 하는 기존 회식과는 달리, 비교적 수평적인 관계에서 친목 유지를 목적으로 하는 식사 자리 위주로 차츰 변모할 것이라는 예측이었습니다. 실제로 부서 및 팀 중심의 회식보다는 소규모로 모이는 형태의 회식이 많아지리라는 예측과(53.9%), 사내의 다른 동기 및 친구와의 모임이 더 중요해질 것 같다(44.6%)는 의견이 대다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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