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화 도입 후 인원을 감축한 은행에 벌어진 일

지난 8월 19일(현지 시각), 일본 3대 메가뱅크 중 하나인 미즈호 은행에서 전산 시스템 장애가 발생해 전국 520여 개점 창구에서 입출금이 막히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전산 마비는 다음날인 20일 오후까지 이어졌고, 아소 다로 재무대신은 이날 열린 기자회견에서 “ATM기를 사용하지 못하는 고령자에게 영향이 가고 있다. 시스템을 서둘러 복구해 고객을 제대로 대응할 것을 요청하며, 앞으로 어떻게 대응해 나갈 것인지 눈여겨보겠다”고 경고했습니다. 같은 날 내각관방장관인 가토 가쓰노부도 “금융 기관의 신뢰에 금이 가는 일이 벌어져 매우 유감이다”고 말했습니다. 그럼에도 같은 달 23일 미즈호 은행이 관리하는 ATM 130여 대가 기동을 멈추는 문제가 재차 발생했다 합니다.

사실 미즈호 은행은 올해 초에도 시스템 장애가 연달아 발생해 여론의 지탄을 받은 전력이 있었습니다. 지난 2월 28일부터 3월 12일까지 약 2주간 4차례에 걸쳐 장애가 발생했고, 급기야는 미즈호 은행장인 후지와라 코지가 기자회견을 열고 대국민 사과를 하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당시 은행장은 시스템 안정화를 약속했으나, 이는 결국 반년도 버티지 못한 공염불로 남고 말았습니다.

미즈호 은행의 카드론 광고. 지난 3월 7일엔 카드론 프로그램 갱신 중 문제가 발생해 일부 이용자가 입금이 막히는 불편을 겪었다 합니다./미즈호 은행 홈페이지

언론은 일본에서 손꼽히는 거대 은행이 불과 한 해 만에 전산 사고를 6차례나 겪은 배경엔, 미즈호 은행의 황당한 인사 전략이 있었다고 지적했습니다. 일본 산케이신문은 미즈호 은행이 메인 시스템인 ‘MINORI(미노리)’를 2019년 7월부터 본격 기동한 이래 서버 담당자를 60% 가까이 줄였다고 지난 8월 31일 보도했습니다. 시스템이 자동화된데다 운영과 유지 보수를 위한 노하우가 충분히 쌓였기 때문에, 서버를 관리할 인원 대부분을 잉여 전력으로 판별해 퇴출한 것입니다. 그 결과 연속으로 터지는 사고에 대처할 역량이 증발해 꼬이는 상황을 실시간으로 목도하면서도 손을 전혀 쓸 수 없었고요.


기술이 발달하며 인간이 도맡았던 업무를 기계가 대체하는 일이 늘고 있긴 합니다만. 심지어 완전 자동화를 달성한 분야라 할지라도 사람 손길이 전혀 필요 없는 것은 아닙니다. AI(인공지능)에 기반한 영리한 장치라도 유지 관리와 보수는 필수이며, 그것만큼은 기계들이 스스로 해결 혹은 처리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아직까진 말이죠.

아무리 좋은 시스템이나 장비라도 이를 관리할 인력은 필수입니다. 사실 어지간한 회사에선 이런 건은 IT 담당 부서가 주 업무로 맡을 일조차 아니긴 합니다만./인벤

실제로 글로벌 회계법인인 딜로이트가 설문 조사한 결과 AI를 활용한 자동화를 도입하는 목적으로 ‘인력 감축’을 택한 임원은 250명 중 7%에 불과했다 합니다. 응답자 4명 중 3명은 AI가 3년 이내에 조직에 거대한 변화를 초래하리라 예측했는데도 말이죠. 웬만한 기업에선 설비를 자동화하고 사람 대신 로봇에게 일을 맡기더라도, 이를 관리할 인원 채용 또한 소홀히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고용하는 인원수 자체는 대체로 큰 변화가 없으리라 내다본다는 것입니다.

물론 고용 규모는 유지할지언정 IT 기술을 보유한 인재가 단순 노동을 하던 인력의 자리를 대체하는 물갈이가 벌어질 수도 있겠습니다만. 기존 인력을 재교육해 자동화 시스템 관리를 맡기는 기업도 더러 있긴 합니다. 이를테면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인 아마존은 물류나 배송 등 단순 반복 업무를 로봇에게 차츰 넘기며, 기존 직원 10만여명을 해고하는 대신 시스템 관리자로 재배치할 계획을 세웠다고 지난 2019년 7월 발표했습니다. 창고에서 물류를 담당했던 비정규직 직원에게 소프트웨어 기술을 가르쳐 그의 자리를 대체한 로봇과 자동화 설비를 관리하는 엔지니어로 일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식이죠. 아마존은 이 프로젝트를 위해 향후 6년간 직원 1명당 평균 7000달러(약 820만원)를 투자할 예정입니다

/iStock

싱가포르개발은행(DBS) 역시 2019년 5월 즈음 전화와 인터넷을 통한 고객 상담을 AI로 자동화하는 대신 콜센터 직원 500명을 다시 가르쳐 보직을 재배치한다 발표했습니다. 이들이 옮겨갈 자리는 소셜미디어 매니저, 고객 경험 디자이너, 음성인식, 생체 전문가 등 13개 직업군이라 합니다.


아무튼 사람이 하던 일을 로봇이나 AI에게 맡기며 이를 빌미로 고용 규모를 드라마틱하게 축소하거나 인건비를 아끼려 시도하는 것은 그리 좋은 전략이 아닐 가능성이 큽니다. 훗날 기술이 더 발달하면 몰라도, 아직은 시스템 유지와 관리엔 사람 손길이 적잖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 써야 할 인력 규모도 결코 무시할 수준은 아니기 때문이죠. 앞서 언급한 미즈호 은행이 겪은 사고도 이 지점을 간과하고서 무리한 감축을 감행한 데에서 기인했다 볼 수 있겠습니다.

우리 정부 또한 AI가 발전하더라도 기업의 채용 규모는 줄지 않을 것이라 예측하고 있다 합니다. 강도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인공지능기반정책관은 지난해 8월 서울 소공동 플라자 호텔에서 'AI의 현재와 미래'를 주제로 열린 제1회 뉴시스 AI 경제포럼에서 “정부가 2017년 글로벌 컨설팅 기업 맥킨지와 공동 조사한 결과 새로운 일자리가 기존 감소분을 상쇄했고, 인공지능 발전으로 일자리 전환이 가속화될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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