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TI 재단마저 '채용엔 우리 검사 쓰지 말아달라'는데

‘E, I 성향이신 분 많은 지원 부탁 바랍니다, ENTJ, ESFJ, INFP, INTP, INTJ 분들은 지원 불가입니다.’

최근 인터넷에서 논란이 됐던, 서울 마포구에 자리 잡은 모 카페의 아르바이트생 채용 공고 중 일부입니다. 특정 MBTI 유형 지원자를 차별한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한 것이 문제가 됐는데요.

/트위터 캡처

MBTI, 즉 마이어스-브릭스 유형 지표(Myers-Briggs-Type Indicator)는 미국 작가인 캐서린 쿡 브릭스와 그녀의 딸 이자벨 브릭스 마이어스가 1944년에 개발한 성격 유형 선호 지표입니다. 스위스의 심리학자 카를 융의 초기 분석심리학 모델을 바탕으로 해, 사람의 성격을 16가지 유형으로 분류해 설명하는 것이 골자죠.

그러나 MBTI는 탄생한 이래 줄곧 ‘신뢰하기엔 부족한 지표’라는 비판에 직면해 왔습니다. 융의 분석심리학 모델을 활용했다고 주장하나, 실제로는 융의 해석과는 무관할 정도로 동떨어진, MBTI 개발진의 독자적인 접근으로 얼룩진 도구라는 것이죠.

또한 통계학적으로 사람 성격은 정규분포를 이룬다는 사실이 학계의 통설임에도, MBTI는 성격 분포가 16개 지점에 집중적으로 나타난다는 다봉분포를 가정한 것도 주요한 비판 지점 중 하나입니다. 게다가 지난해 미국에서 발표된 다큐멘터리인 ‘페르소나: 성격 검사 뒤에 숨겨진 어두운 진실(Persona: The Dark Truth Behind Personality Tests)’에서 이자벨의 인종차별 사상이 MBTI에 영향을 미쳤음이 폭로됐습니다. 우생학에 근거한 인간 분류가 과학적으로 인정받기 어렵듯, 인종차별을 기저에 품은 MBTI 역시 신뢰하기엔 무리가 있다는 것이죠.

/게티이미지뱅크

MBTI를 주관하는 마이어스-브릭스 재단도 이러한 논란을 충분히 의식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자체 윤리지침을 통해 "(MBTI 중)어떠한 유형도 더 낫거나 더 건강하거나 더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고 밝혔습니다. 심지어 채용 과정에서 MBTI 결과가 지원자들을 걸러내는 장치로 사용되는 것은 '비윤리적'이며 '불법'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 적도 있습니다.

정규 MBTI마저도 이처럼 질타를 받는 상황인데, 한국에서 대중적으로 널리 통용되는 것은 거기에서 한층 더 열화된 유사품인 ‘16 Personalities’라는 점도 상당한 문제입니다. 이 검사의 정식 명칭은 NERIS Type Explorer로, 한국 MBTI 연구소 측에서는 2020년 6월부터 이미 16 Personalities를 ‘가짜 검사’로 못 박아 두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흔히 말하는 ‘자신의 MBTI’는 가짜로 지목된 이 ‘인터넷 무료 검사’에 근거한 경우가 태반이죠. 그럼에도 아직 국내에선 아르바이트 수준의 일자리는 물론, 중견 이상 규모 기업의 정규직 공채에도 MBTI 결과 제출을 요구하는 경우가 간혹 있습니다.

여론도 MBTI를 채용에 활용하는 것에 그리 긍정적이진 않습니다. 한국리서치가 전국 만 18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해 지난 1월 발표한 바에 따르면, 응답자 중 26%만이 ‘직원 채용에 MBTI를 활용하는 것은 적절하다’고 답했다 합니다.

/한국리서치

30대 이하가 대체로 40대 이상보다 MBTI의 채용에 활용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는데요. 정작 검사 경험이 ‘있다’는 응답은 오히려 30대 이하에서 압도적이었습니다. MBTI를 실제로 경험해 본 연령대 쪽이 도리어 MBTI의 채용 활용에 부정적이라는 것입니다.

/한국리서치

그러나 적어도 현재로서는, 채용 시 MBTI를 요구하는 관행에 제재를 가하는 것은 어려울 전망입니다. 지난 2019년 '채용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이 개정되면서 입사 지원자에게 불필요한 개인정보를 요구하지 못하도록 하도록 규정은 했습니다만. 법에서 정하는 개인정보는 구직자 본인의 용모·키·체중 등의 신체적 조건, 구직자 본인의 출신지역·혼인여부·재산, 구직자 본인의 직계비속 및 형제자매의 학력·직업·재산에 걸쳐 있을 뿐 MBTI의 주요한 타깃인 ‘성격’엔 별다른 규제가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과거 고용노동부가 ‘혈액형 성격설’에 제동을 걸었듯 추후 MBTI에도 비슷한 방식으로 문제를 제기할 가능성은 존재합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2017년 3월 '능력중심채용 가이드북'을 제작·배포하겠다 밝히며, 30대 기업 중 2016년에 하반기 채용을 했던 24곳의 입사지원서를 분석한 결과 혈액형 공개를 요구하는 업체가 존재했다 언급했던 바가 있습니다. 당시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능력중심채용이 민간 기업으로 빠르게 확산돼 청년들이 직무와 관련된 필요한 스펙만을 준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며 비과학적인 스펙을 불필요하게 요구하는 관행을 지적했고, 이후 채용 시 성격 파악을 목적으로 혈액형을 묻는 기업이 상당수 자취를 감췄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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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LLAB INS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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