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NVIDIA)의 황금기는 누가 만들었을까

20th Century ‘Game’ Boys

대한민국의 1990년대 말, 486컴퓨터와 PC통신의 시대를 지나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온라인 게임이 등장하고, ‘스타크래프트’의 대유행과 함께 PC방이 전국적으로 문을 열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컴퓨터 게임을 즐겼던 사람이라면, 그리고 특히 게임을 위해 PC 조립을 시도해 본 사람이라면 익숙했을 기업의 이름이 있다. 바로 엔비디아(NVIDIA Corporation)이다. 친구들과 함께 컴퓨터 잡지와 용산 전자상가 신문광고를 뒤적거리며 장차 나의 PC에 들어갈 부품을 고르곤 했다. 한정된 예산으로 만족스런 퍼포먼스를 내려고 CPU와 RAM, 하드디스크 등과 함께 심각하게 고려해야 했던 것이 바로 그래픽카드, 그리고 그 안의 핵심부품인 GPU(Graphics Processing Unit)였다. 당대를 주름잡던 그래픽카드 브랜드는 3dfx의 ‘부두(Voodoo)’와 NVIDIA의 ‘RIVA TNT’였는데, 이렇게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며 게이머들을 설레게 했던 두 회사의 격돌은 NVIDIA가 지포스(GeForce) 제품군을 선보임에 따라 NVIDIA의 완전한 승리로 끝나게 된다. 경쟁에서 패배한 3dfx는 모든 특허와 지적재산을 NVIDIA에 매각하고 2002년 파산을 선언했다.

물론 이는 산업용 시스템 반도체 세계와는 거리가 있는, 20세기 마지막의 ‘게임 소년들’의 이야기이다. 이렇게 NVIDIA의 지포스는 그래픽카드의 1인자로 기억되었다가 그들이 서서히 나이를 먹고 PC게임에서 멀어지면서 잊혀졌다. 그랬던 NVIDIA가 이제 게임과는 거리를 두고 살고있던 그들의 시야에 다시 들어오게 된 것은 2010년대 초, 암호화폐 채굴 관련 뉴스를 통해서였다.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 채굴은 컴퓨터가 복잡한 계산을 수행하여 블록체인 네트워크를 유지하고 거래를 확인하는 과정이다. 채굴에는 해시 계산 등 단순 반복적인 작업이 요구되는데 그래픽카드는 제품의 주목적 상 대규모 병렬 처리에 특화되어 있고 여러 계산을 동시에 처리할 수 있어 CPU보다 더 효율적이다. 암호화폐 호황기에는 중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 엄청난 규모의 냉각팬과 대량의 컴퓨터가 설치된 채굴 작업장들이 생겨났고 여기서 그래픽카드를 모두 흡수하는 바람에 GPU 품귀 사태가 발생했다.

/게티이미지뱅크

대규모 언어모델의 등장으로 최전성기 도래

ChatGPT 등 사전 학습된 방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사용자 요구에 맞춰 언어를 생성하는 대규모 언어 모델(LLM)의 등장으로 NVIDIA는 이른바 최전성기를 맞이하게 됐다. LLM을 사용하는 딥러닝 AI는 훈련과 추론을 가속화하기 위해 설계된 GPU나 텐서처리장치(TPU)와 같은 특수한 하드웨어를 사용한다. 앞서 말한대로 GPU는 대규모 병렬 처리에 효율적이고 탁월하며, 특히 NVIDIA가 자체 개발하고 무상 배포한 CUDA 아키텍처는 지금의 AI 환경을 불러오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고 평가받고 있다. 스스로 큰 시장을 만들어 낸 것이나 다름 없다.

게임용 그래픽카드를 만들던 시기, 몇 차례나 도산 위기에 처했었고, 한때 제품 품질 문제로 애플로부터 거래중단을 통보받는 굴욕적인 경험까지 했던 NVIDIA는 이제 완전히 달라진 위상을 갖게 되었다. 2015년부터 NVIDIA의 매출은 가파르게 상승하기 시작했고, 2020년 에는 부동의 반도체 1위 인텔의 기업가치를 추월했다. 이후에도 AI와 관련한 시장지배력 덕분에 NVIDIA의 시가총액은 계속 급등했고 이윽고 1조 달러의 장벽을 넘어섰다. 또한 H100 AI GPU 출시에 이어 2024년 차세대 Blackwell GPU를 예고하며 한동안 누구도 넘볼 수 없는 GPU 시장 점유율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NVIDIA CEO 젠슨 황이 NVIDIAN들을 이끄는 방식

NVIDIA의 황금기는 우연하게 찾아온 것이 아니다. 가상화폐와 AI 시대가 도래하면서 많은 양의 연산을 동시다발적으로 할 수 있으며 전력도 적게 사용되는 GPU에 대한 수요가 폭발했고 NVIDIA는 이런 상황을 아주 오래 전부터 예상하고 대응해 왔기 때문에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NVIDIA의 CEO인 젠슨 황(Jensen Huang)은 대만계 미국 이민 2세이자 스탠포드대를 졸업한 엔지니어 출신으로 실리콘밸리에 있는 카페 Denny's에서 친구인 크리스 말라코프스키(Chris Malachowsky), 커티스 프림(Curtis Priem)와 함께 NVIDIA를 창업했다. 그는 나중에 모교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창업을 준비하던 시절을 이렇게 회상했다. “그 해 추수감사절 무렵 나의 멋진 두 친구와 그래픽 회사를 시작하려고 그 카페에 모였다. 친구들은 이미 IT 관련 회사에 다니고 있었지만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우리가 창업을 한다면 세상에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지 계속 토의하고 아이디어를 모았다.”

NVIDIA는 회사에서 일하는 직원들을 엔비디언(NVIDIAN)이라고 부른다. 그는 어떻게 미래를 상상하고 많은 변화에 대응하여 전 세계 2만 6천명의 엔비디언들이 일하는 회사로 키워낼 수 있었을까? 젠슨 황은 작년 11월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아이디어 캐스트에 출연하여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조직 내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야만 업무 중 계속적으로 학습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학습의 결과로 나타는 새로운 정보는 회사 내에서 자유롭게 흐르게 된다.

젠슨 황이 이끄는 NVIDIA는 3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끊임없이 변화하는 시장 수요를 따라잡아 새로운 제품과 새로운 서비스를 제공해왔다. 비디오 게임과 3D 그래픽으로 시작했고 가상화폐, 인공지능, 딥러닝 등 데이터 사이언스 프로젝트를 뒷받침할 플랫폼을 개척하고 있다. 매년 전 세계 수 백만 명의 개발자가 NVIDIA가 구축한 생태계에 참여하고 있으며 매일 약 2천 5백명의 입사지원서가 인사팀에 몰리고 있다. 지금도 그는 트레이드마크인 검은 가죽자켓을 걸치고 거침없이 사무실을 누비며 엔비디언들과 1:1로 이야기를 나눈다. 정보가 경영진, 임원, 팀장 등을 통해 계층적으로 전달되는 것을 최대한 피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는 이러한 리더십으로 수 많은 실패를 딛고 지금의 NVIDIA를 만들었으며 2019년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서, 2023년 포춘에서 각각 올해 최고의 CEO로 선정되었다.

이처럼 느닷없이 찾아 온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면 기업은 빠르게 변화하는 분야를 주시하며 언제나 유연한 반응성을 유지할 수 있는 리더십과 조직문화가 정착되어 있어야 한다. 특히 AI, 로봇공학, 디지털 생물학과 같은 분야에서 예상치 못한 발견과 진전이 있을 수 있다. 전문가의 존재, 지속적 학습, 원활한 정보 유통으로 발휘되는 조직의 반응성은 그런 신호를 회사가 적시에 수용할 수 있게 함은 물론, 인접 분야의 인사이트도 활용할 수 있게 만든다. 이렇게 구축된 조직은 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의 기본적인 원리를 이해하고 활용해서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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