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피라미드 조직에 대비하라

『인구절벽(The Deomographic Cliff)』을 저술한 미국의 경제학자 해리 덴트(Harry Dent)는 ‘경제의 가장 훌륭한 선행지표는 바로 인구구조’라고 말했다. 인구통계학자들에 따르면 각 가정의 가장(家長)이 대략 46세 쯤일때 가장 많은 소비가 이루어 진다. 광범위한 경제 추세를 예측할 때의 핵심은 바로 가계 소비의 흐름이다. 개인의 생애주기에 따른 소비패턴의 변화를 토대로 1989년 일본의 버블 붕괴와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가 예측될 수 있었다. 인구 통계를 참고하여 경제 단위 내 가장 많은 소비를 할 수 있는 연령 계층의 숫자가 어떻게 변해갈지 알 수 있다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한국은 일본과 더불어 급속한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하고 있다. 이 상태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국가별 중위 연령이다. 2023년 현재 한국의 중위 연령은 45.6세이며 일본은 48세를 넘어섰다. 속도로 따지자면 한국이 훨씬 빠르다. 한국은 이미 초고령사회로 널리 알려진 일본을 맹렬하게 추격하고 있다. 총 인구 중 65세 이상의 비율인 고령화율은 현재 한국이 약 18%, 일본이 29% 수준이지만, 한국의 통계청과 일본 내각부의 자료에 따르면 2045년 쯤 두 국가의 고령화율은 처음으로 역전될 것이고, 2060년에는 한국이 43,9%, 일본이 38.1%로 차이가 벌어진다. 이때 한국의 중위연령은 61.2세이다. 2060년의 한국 내 모든 사람을 나이순으로 줄세웠을 때 정년퇴직하고 환갑을 넘긴 사람이 가장 가운데 있을 거란 얘기다.

/국가통계포털 (www.kosis.kr)

이에 따라 노동력 인구의 고령화도 진행되고 있다. 국내 기업에는 2차 베이비붐 세대부터 그들의 자녀인 에코(echo)세대가 다른 연령대에 비해 대량으로 채용되어 근무하고 있는 상황이다. 앞으로도 더욱 고령화가 더욱 빠르게 진행된다고 하면 조직 내 연령 구성이 아래로 갈수록 얇아지는 ‘역피라미드(Inverted Pyramid) 형태’가 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고령화로 인해 전체 인구 구성이 변하면 기업 조직 내 인구 구성은 더욱 빠르게 변한다. Z세대 이후로는 디지털 기술에 익숙하고, 자유로운 업무 환경을 선호하며, 자신의 가치관과 일치하는 기업에 취업하는 경향이 강해질 것이다. 그리고 현재 대부분의 기업들이 신입보다는 즉시 투입 가능한 경력직 채용에 골몰하고 있어 조직 내 연령대 구성 변화는 우리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다가올 것이다.

1980년대부터 비교적 최근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대기업들은 일본의 대규모 정기 공채를 답습했다. 쏟아져 나오는 대졸 지원자 중에서 부적합한 인원을 제거하고 받아들이는 이른바 ‘그물형’ 대규모 공채로 인재를 채용했다. 필기와 집단면접으로 지원자들의 잠재력을 유추해 채용하는 이른바 ‘포텐셜 채용’을 했던 것이다. 합격한 신입사원들은 연수가 끝난 후 명확한 직무를 정하지 않고 직무나 근무지를 순환하도록 했다. 대규모 공채와 인턴식 직무 순환, 정년에 가까운 고용은 한국과 일본 기업만의 특유한 방식이었다.

/게티이미지뱅크

이러한 구조에서 급속한 고령화는 조직에 다양한 문제를 일으킨다. 총 인원이 일정한 상태에서 중장년 세대가 두터워지면 젊은 세대는 얇아진다. 베테랑들이 활약할 때는 좋겠지만 그들이 은퇴한 다음에는 사업을 지탱할 차세대 인재가 없어져 버린다. 신규 채용하더라도 회사의 실제 전력으로 기능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심지어 조직 내 중장년 세대가 너무 많은 경우 조직문화 노후 및 업무 부담 가중으로 신규 채용한 젊은 세대가 쉽게 이직해 버리게 되는 악순환이 벌어진다. 지식과 노하우가 차세대에게 제대로 전수되지 않으면 조직은 생존이 어려워진다. 또한 호봉제에 가까운 연봉제를 유지하는 경우 퍼포먼스 증가가 없는 인건비 상승이 일어난다. 한편 젊은 세대가 줄어들면 부하직원이 없거나 매우 부족한 팀장, 리더급이 점차 늘어나게 되고 이는 ‘관리할 사람이 없는 관리직’으로서 조직 내 직위 미스매치가 일어나게 된다.

그렇다고 이런 문제를 인위적 구조조정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애초에 새롭게 유입되어 조직을 떠받칠 신규 후보자군 자체가 부족한 것이므로 당장 눈앞의 생산성 저하에 자극된 섣부른 정리해고는 조직의 소중한 자산을 아무런 대안도 없이 폐기처분하는 행위에 지나지 않게 된다. 저출산 고령화로 인재 전쟁은 매우 과열될 것이며, 지금의 학교, 대학, 군대가 그렇듯이 이제 곧 대기업의 신규 채용도 미달하는 상황이 닥칠 것이다. 당장 투입 가능한 인력이 한 명이라도 더 있어야 하는데, 시니어 직원이라고 해도 역량이 있다면 절대로 유출이 일어나지 않도록 막아야 한다.

다만 위와 같은 문제가 한국, 일본, 대만 등 동아시아 국가의 기업들에게만 심각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미국을 비롯한 서구의 기업들은 이미 경력직 수시채용, 직무중심적 개인주의, 수평적 조직문화가 정착되어 새삼 역피라미드 형태 인구변화에 큰 위협을 느끼고 있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미국 웹에서 역피라미드형 조직에 대해 검색을 해보면 한국, 일본과는 다르게 인구 구조에 대한 문제의식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주로 CEO와 매니저들이 스태프와 고객들을 아래에서 떠받치는 서번트 리더십(Servant Leadership)에 대한 검색결과 뿐이다. 이제 우리도 지금까지의 조직 내 계층구조(Hierarchy)를 벗어나 직무 중심의 채용과 수평적 조직풍토, 목표와 자기 통제 방식의 성과평가를 확대해야 한다.

직무 중심의 채용제도란 해당 직무에 필요한 지식과 노하우, 역량, 자격 등을 갖추고 있다면 나이에 관계없이 인재를 채용하는 것이다. 성과평가 또한 목표 중심의 자기 통제 방식을 강화하여 스스로 1년, 반기, 분기 목표를 세우고 달성도를 평가한다. 관리자가 소속 팀원의 업무를 세세히 들여다보고 평가 및 코칭하는 시스템이 아니라 스스로의 목표달성 및 근접도에 따라 처우가 결정된다, 주로 1-2년 단위로 실적에 따라 재계약 여부가 결정되는 현재의 대기업 임원들 고용형태와 비슷해지는 것이다. 필요하다면 IT 서비스 기업에서 고객과 체결하는 SLA(서비스 수준 협약, Service-Level Agreement)과 유사한 제도를 활용할 수도 있다. 회사와 시니어 직원이 1대 1로 PLA(업무수행 수준 협약, Performance-Level Agreement)을 맺는 것이다. 더불어 직원 개인주의적 수평 조직문화로 전환해 직무 중심 채용제도를 뒷받침할 수 있다면 앞으로 다가올 역피라미드 시대에서 좀 더 수월하게 조직의 안정성을 도모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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