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하나를 대체 몇 개로 쪼갠 거에요

웹드라마 ‘좋좋소’ 12화를 보면, 면접을 본 회사 이름과 표준근로계약서상 회사명이 달라 서명을 하던 신입사원(이예영)이 멈칫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사장은 “이상한 회사는 아니고 예영씨가 개발팀이니까 따로 분리해 놓은 거야, 별문제 없어”라고 말하며 대충 넘어가려 하죠.

유튜브 채널 ‘이과장’에 업로드된 ‘좋좋소’ Ep.12 中/유튜브 채널 ‘이과장’

하지만 옆에서 같이 근로계약서를 작성하던 비개발자인 기존 직원(조충범)도 “저도 그 회사로 돼 있는데요”라고 묻는데요. 그럼에도 “어 조주임도 그쪽으로 일단 빼놨어, 뭐 어차피 상관없어 다 똑같아”라며 마찬가지로 설명을 피합니다.

그러나 직장생활을 조금만 해 보신 분들이라면 사장의 의도쯤은 눈에 뻔히 보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회사를 쪼개서라도 사업장 규모를 5인 이하로 유지해 주요한 근로기준법 조항들을 피해가려는 꼼수죠.

실제로 현행법상 종사자가 4인 이하 사업장 5인 미만인 사업장은 근로기준법 조항 중 상당수를 적용받지 않습니다. 우선 주 52시간 근무제와 대체공휴일제를 준수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물론, 휴일이나 야간에 일해도 수당을 지급할 의무가 없습니다. 게다가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조항마저도 5인 미만 사업장만큼은 예외로 합니다.

그렇기에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거나 언론에 보도되는 굵직한 노동계 문제 중 상당수는 5인 미만 사업장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민주노총 부설 민주노동연구원이 지난달 10일 발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노동자 중 5인 미만 사업체 근로자는 17.8%에 불과하지만 전체 최저임금 미달 노동자 가운데 그들 비중은 37.3%에 달할 정도죠.

최근엔 ‘좋좋소’에서 묘사된 바와 같이 회사를 억지로 쪼개 규제를 피하던 사업장이 정부 단속 결과 대거 적발되는 일도 있었습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달 23일 그간 고발·제보 등을 통해 5인 이상으로 의심되는 사업장 총 72곳에 실시한 근로감독 결과를 발표했는데요. 그 결과 8곳에서 사업자등록을 총 50개나 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가족 명의 등을 활용해 사업장을 형식적으로만 나누어 두고, 실질적으로는 채용과 급여 인사·노무·회계 관리를 사업장 하나에 몰아 하는 것이 주요한 수법이었습니다. 적발된 사례 중에는 1개 사업장을 무려 36개로 나눠 형식상 5인 미만으로 운영한 곳도 있었습니다. 해당 사업장은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아야 할 근로자 중 일부를 아예 '사업소득자'로 돌려 가며 억지로 수를 줄였다 합니다.

/게티이미지뱅크

노동부는 이들 사업장에 5인 이상 사업장에 적용되는 주요 노동법 규정을 적용했고, 총 25건에 이르는 법 위반사항을 적발하고 시정 지시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연장·야근·휴일근로수당 3억6000만원 미지급, 연차 유급휴가 2억1000만원 미지급, 퇴직금 1600만원 미지급, 서면 근로조건 명시 위반 등이었습니다.

나머지 7개 사업장은 각 사업장을 2개로 나눠 운영했습니다. 이들 사업장에서도 역시 연장근로수당 등 1000여만원을 지급하지 않은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5인 미만 사업장을 법의 사각지대에서 꺼내려는 노력 자체는 예전부터 꾸준히 있었습니다. 헌법소원도 그간 수차례에 걸쳐 제기됐었는데요. 하지만 영세사업장 운영의 어려움과 국가의 근로감독 역량 한계 등을 이유로 번번이 합헌 판결이 내려지곤 했습니다.

비교적 근래에 발효된 법안인, 올해 1월 27일부로 시행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중대재해처벌법)마저 5인 이하 사업장은 적용 예외로 하기에, 적어도 한동안은 상황이 크게 달라질 것 같진 않습니다.

실제로 지난달 7일 김부겸 국무총리는 중대재해처벌법을 5인 미만 사업장까지 적용 확대를 요구하는 발언에 대해 “정부로서는 생명 보호와 함께 현실적인 조건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헌법재판소에서 연속해 합헌 판결을 내린 취지와 마찬가지로, 기업의 사정이나 감시감독상 난점도 무시할 순 없다는 것입니다.

이날 오후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종합정책질의에 출석한 김 총리는 강은미 정의당 의원으로부터 ‘중대재해처벌법을 5인 미만 사업장까지 적용하도록 하는 개정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질의를 받았습니다.

김 총리는 “진보적인 정치 입장을 가진 분들은 5인 미만 사업장도 보호해야 한다고 하지만 현장에서 기업하는 분들은 지금도 도저히 견딜 수 없다고 정부에 항의한다”며 “취지는 동의하지만 정부로서는 동시에 두 가지, 생명을 보호한다는 가치와 현실적인 조건을 고려한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회사를 5인 미만 사업장으로 돌리고자 일부러 나누는 ‘쪼개기’에 대해선 정부 차원에서도 강력한 단속 의지를 내비치고 있습니다. 박종필 노동부 근로감독정책단장은 “이번 (사업장 72곳) 근로감독은 사업주들에게 형식상으로는 사업장이 분리됐다 할지라도 실질적으로 인사·노무·회계 관리가 통합돼 있다면, 관련 노동법 적용을 피할 수 없다는 인식을 주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사업장 규모에 걸맞은 올바른 노동관계법 준수를 바란다”고 당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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