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럽 국가 가운데 담배 광고 규제가 가장 느슨한 스위스마저도, 최근 국민 투표를 거쳐 담배 광고가 청소년에게 노출되지 않도록 제한을 걸었다 합니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지난 13일(현지 시각) 스위스가 청소년 상대 담배 광고 금지를 놓고 실시한 국민투표에서 56.6%가 규제를 지지했다 합니다. 전체 26개 주 중에선 찬성표가 과반을 차지한 곳이 16개에 달했습니다.
스위스 다국어 뉴스 사이트 스위스인포는 성인 전용 언론 매체와 인터넷 사이트 등에서만 담배 광고를 함으로써 미성년자들이 담배 광고를 보지 못하게 하는 것이 이번 투표의 골자라고 전했습니다. 스위스는 종전까진 텔레비전·라디오를 제외한 매체 대부분에서 담배 광고를 허용해 왔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이번 투표 결과에 따라 곧바로 법안을 마련해야 하며, 늦어도 내년부터 신문·영화관·인터넷·옥외 광고판 등에서 담배 광고가 금지될 전망입니다.

스위스는 그동안 주요 선진국 가운데 담배 광고 규제가 가장 느슨한 나라로 꼽혔습니다. 영국 매체 BBC는 “이는 세계 주요 담배 회사가 스위스에 본사를 두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지적했습니다. 그 여파로 스위스 국내 흡연율은 25% 수준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으며, 15~24살의 흡연율은 31.7%로 전체 평균을 약간 웃돕니다. 스위스인포에 따르면 흡연자 중 57%는 성인이 되기 전부터 담배를 피우기 시작한다는 조사 결과도 있습니다.
스위스에서 담배 산업은 국가를 지탱하는 거대한 축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스위스 담배 산업 규모는 60억 스위스 프랑(약 7조8838억원)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1%에 육박합니다. 담배 관련 업종 종사자만 해도 1만1500여명에 달합니다. 그럼에도 시민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선 규제가 필요하다는 여론을 결국 거스르진 못했습니다. 스위스 내 반흡연 시민 단체 발표에 따르면 인구 860만명인 스위스에선 매해 9500여명이 흡연 때문에 세상을 등지고 있습니다.
스위스뿐 아니라 전 세계 선진국은 전반적으로 담배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추세입니다. 우리나라 역시 지난해 7월 1일부터 편의점과 소매점 외부에 담배 광고 노출을 금지하는 국민건강증진법을 적용하기 시작하는 등, 최근 들어 국민 건강을 위한 담배 광고 규제를 본격화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국내 담배 소비량은 줄어드는 기색이 그다지 뚜렷하지 않습니다. 지난해 10월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연간 담배 판매량은 2019년 34억4700만갑에서 2020년 35억9000만갑으로 1억4300만갑(4.15%) 증가했습니다. 2015년에 가격을 인상한 영향으로 2017년부터 4년 연속 감소세를 보이던 담배 판매량이 돌연 반등한 것입니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흡연율은 2019년 20.3%에서 2020년 19.8%로 떨어졌습니다. 흡연율이 줄었음에도 담배 판매가 늘었다는 것은, 기존 흡연자의 흡연량이 증가했다는 것입니다. 코로나 19 장기화로 흡연자들이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담배를 전보다 많이 구입했다는 점과, 재택근무가 활성화되면서 담배를 피우기 쉬운 환경이 조성된 것 등이 주요한 원인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즉,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 여파로 기존 흡연자 대부분은 담배를 끊기는커녕 오히려 이전보다 흡연량을 늘리고 있는 것입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흡연 경험이 있는 사람은 코로나 19 감염 시 병세가 악화될 위험이 비흡연자보다 15배 가까이 높습니다. 보건복지부는 흡연을 하면 담배와 손가락에 입이 닿게 돼 바이러스가 흡연자의 입과 호흡기로 들어갈 가능성이 높아지며, 흡연으로 흡입하는 독성물질이 심혈관, 폐, 면역 기능을 손상시켜 감염과 병세 악화 가능성을 높인다 설명했습니다. 보건복지부는 “흡연은 심혈관 질환, 암, 호흡기 질환, 당뇨병과 같은 질병을 야기하고, 이러한 기저질환을 가진 사람은 코로나 19에 감염된 경우 병세가 더욱 나빠지며 사망 위험이 커질 수 있다”고 전했습니다.
유럽 의학회 연구에서도 담배에 함유된 니코틴은 코로나 19가 인체에 침투하기 위해 필요한 ACE2 수용체를 늘렸으며, 이 때문에 흡연자는 코로나 19에 더 쉽게 감염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 역시 흡연자는 비흡연자에 비해 코로나 19로 중증 질환에 걸릴 확률이 더 높으므로 금연상담전화, 모바일 금연지원서비스, 니코틴보조제(껌, 패치 등)와 같이 검증된 방법을 통해 즉각 금연할 것을 권고한 바가 있습니다.

직장인은 코로나 19 감염 문제뿐 아니라 업무 효율 차원에서도 금연을 권장 받고 있습니다. 지난 2017년 이화여대가 한국건강증진개발원 의뢰로 작성한 '근로자 금연을 위한 담배연기 없는 사업장 모형 개발'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흡연 직장인은 하루에 평균 41분 정도를 흡연하는 데 사용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사무직 직원들이 주로 근무하는 7개 회사(직원 수 총 1009명)를 대상으로 연구팀이 흡연 실태를 확인하고 근무지 이탈에 따른 생산성 손실액을 따진 결과, 일급 15만5000원을 기준으로 1년에 약 318만원의 손실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보고서 작성에 참여한 안정훈 이화여대 교수는 "담배를 피우러 이동하는 시간을 제외한, 흡연 시간만을 기준으로 측정했기 때문에 실제 생산성 손실은 이보다 클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1월 중증·고도 흡연자를 대상으로 4박 5일간의 전문치료형 금연캠프를 운영한다고 밝혔습니다. 전문치료형 금연캠프는 담배를 '매일 1갑씩 20년 이상, 혹은 2갑씩 10년 이상'(20갑년) 피운 중증·고도 흡연자에게 전문적인 치료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국가금연 지원 서비스입니다.
전국 17개 지역금연지원센터가 운영하는 금연캠프에서는 금연상담과 교육, 건강검진 및 전문의 진료, 흡연 중증도 평가, 심리상담·스트레스 관리, 운동 프로그램, 금연 치료제 등 다양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참가 대상은 20년 이상 흡연력이 있는 사람 중 다른 국가금연 지원 서비스를 이용했지만 금연에 2회 이상 실패한 사람입니다. 흡연 관련 질병을 진단받았지만 아직 금연하지 못한 사람도 참가할 수 있습니다. 흡연자별로 금연캠프에 총 3회 무료로 참여할 수 있으며, 이미 이용 중인 국가금연 지원 서비스가 있다면 해당 서비스 종료 후에 참가할 수 있습니다. 금연캠프 수료 이후에는 금연상담 관리도 6개월에 걸쳐 총 9회 이상 제공합니다. 지난해 금연캠프 참여자의 4주 금연 성공률은 78.3%로 나타났습니다.
개최 일정 및 구체적인 프로그램은 가까운 지역금연지원센터나 국가 금연지원센터 금연두드림 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보건복지부는 "금연은 본인 의지만으로는 성공하기 어렵지만, 올바른 정보제공, 금연상담, 금연 치료제 등을 병행하면 성공률이 6배까지 증가한다"고 강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