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사원이 우리말을 몰라 사고를 친다면

제가 군 복무를 하던 시절, 중대장이 휘하 분대장들을 소집한 자리에서 뭔가에 실망했다는 내용으로 훈시를 하던 중, 문득 한숨을 푹 쉬더니 “그래도 이 신세가 미군 중대장보다는 낫다”는 말을 꺼낸 적이 있었습니다. 미군 보병엔 교육 수준이 너무나도 떨어지는 병사가 굉장히 많아, 사병들을 정기적으로 모아 영어를 가르치는 것이 중대장의 주요 임무 중 하나라는 이유였습니다.

당시 제가 근무한 대대는 FEBA(전투지역전단) 범주에 드는 곳으로, 고졸자 비율이 거의 절반에 육박했습니다. 대한민국 육군 평균 기준으로도 지적인 부대라 말하기엔 무리가 있었죠. 그럼에도 중대장은 이따금 “많은 걸 바라지도 않는다, 너희는 적어도 내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아는 듣잖니”라고 말하며 위안을 삼곤 했는데요.

중대장의 말이 사실인지를 직접 확인해 볼 기회는 달리 없었습니다만. 아무튼 세상에 직장 상사가 교편을 잡지 않으면 굴러가지 못하는 조직이 존재할 수 있나 싶긴 했습니다. 암만 미군 사병의 인적 자원 수준이 바닥 밑의 바닥이기로 유명하더라도 말이죠.

하지만 요즘 세태를 보건대, 중대장의 말에 군대 특유의 상당한 과장이 섞이긴 했을지언정, 아예 없는 소리를 지어낸 수준까진 아닐 것 같다는 생각도 가끔은 들긴 합니다. 우리나라 회사에서도 ‘금일(今日)’이나 ‘익일(翌日), ‘수신’, ‘발신’, ‘참조’ 등을 알아듣지 못하는 신입사원 때문에 사고가 터졌다는 소문이 종종 들려오곤 하니까요.

/EBS

실제로 사람인이 지난해 10월 기업 260개사를 대상으로 '직원 국어 능력 만족도'를 조사한 결과, 83.8%에서 재직 중인 직원들의 국어 능력에 '불만족스럽다'는 답변을 받았던 적이 있습니다. '작문 능력'(38.1%·복수 응답) 다음으로는 '어휘력'(37.3%)에 불만이 많았으며, '논리력'(33.5%), '맞춤법'(30.4%), '경청 태도'(26.9%), '말하기·듣기 능력'(26.2%), '독해(문해)력'(19.6%) 등이 그 뒤를 이었습니다.

보다 구체적인 업무 관련해서는 '보고서·기획안 등 문서 작성 능력'(65%·복수 응답), '대면 보고 등 구두 의사소통 능력'(39.6%), '이메일 등 활자 소통 능력'(24.6%), '회의·토론 능력'(21.9%), '전화 의사소통 능력'(16.5%), '프레젠테이션 능력'(13.1%) 순이었습니다.

연령별 국어 능력에 대한 평균 만족도 점수는 40대(75.3점), 50대 이상(73점), 30대(72.4점), 20대(65.2점) 순으로, 대체로 나이가 어린 직원일수록 국어 능력이 부족하다는 평을 받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또한 응답한 기업 중 45.4%는 20∼30대 직원들이 이전 세대보다 국어 능력이 낮다고 했습니다. 48.5%는 '비슷하다'고 답했으며, '오히려 높다'는 응답은 6.2%에 불과했습니다.

/사람인에이치알

기업이 생각하는 20∼30대 직원들의 국어 능력 저하 원인은, 첫째가 '메시지로 단문 위주 의사소통'(68.6%·복수 응답)이었습니다. 다음으로는 '활자보다 영상 위주로 콘텐츠 소비'(62.7%), 독서 부족'(39.8%), '작문 경험 부족'(38.1%), '교육 커리큘럼 상 문제'(5.9%) 등을 꼽았습니다.

지난해 9월 7일 교육부와 국가평생교육진흥원 성인 1만429명을 면접 조사해 발표한 ‘제3차 성인문해능력조사 결과’에서도 일상생활에 필요한 문해력을 갖추지 못한 ‘수준1(초등 1~2학년 학습수준)’ 인구가 약 200만1428명으로, 전체 성인 중 4.5%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산됐습니다.

기본적인 읽기와 쓰기, 셈하기는 가능하지만 일상생활에 활용하기에는 미흡한 ‘수준2(초등 3~6학년)’는 185만5661명(4.2%), 단순 일상생활에서는 불편함이 없지만 공공·경제생활에서는 어려움이 있는 ‘수준3(중학 1~3학년)’은 503만9367명(11.4%)에 달했습니다. 중학생 이하 수준 문해력으로 사회생활을 하는 성인도 아주 없진 않다는 것이죠.

/교육부

상황이 이렇다 보니 중대장에게 사병 교육을 맡긴다는 소문이 들리는 미군처럼, 우리나라 기업 중에서도 회사 차원에서 임직원의 국어 능력 증진을 위해 나서는 모습도 보이곤 합니다. 사람인 설문에서도 응답한 기업 중 45%는 직원들의 업무상 국어 능력 향상을 위해 별도로 투자를 한다고 밝혔습니다.

실제 도입한 방안으로는 '보고서·기획안 작성 클래스 운영'(52.1%·복수 응답)이 가장 많았고, '의사소통 코칭 운영'(37.6%), '관련 도서 구입 비용 지원'(25.6%), '프레젠테이션 클래스 운영'(19.7%), '관련 강의 수강 비용 지원'(16.2%) 등이 뒤를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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